2018/01/17 14:28

건강 일상

최근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병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건강한 돼지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걸려버린 뒤로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처음 동네 내과를 갔을 때는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시길래, 내가 느끼기엔 단순 스트레스가 아니라 역류성 식도염일 것 같아 더 큰 병원을 찾았다. 큰 병원에 가보니 증상만으로는 역류성 식도염의 모든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셨고, 이제부터 맵고 짠 강렬한 음식, 밀가루, 탄산, 커피 등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아프면 굶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하셨다. 이번에 아프면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 음식-특히나 외식-에서는 순하고 건강한 메뉴는 눈씻고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춧가루가 안들어간 음식을 찾기란 너무나 힘이 들고, 모든 메뉴에는 거진 밀가루가 들어가 있다. 맛있는 음식엔 모두 밀가루가 들어가 있으며, 이게 맛있으면 밀가루 음식인건지, 밀가루여서 맛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니까. 어쩌면 '맛있는 음식'과 '밀가루'는 거의 동치관계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발병하고 난 뒤에는 거진 2~3끼를 미음으로 먹었다. 초반에는 닭죽 조차도 몸에서 거부했다. 조금만 다른 걸 먹어도 밤마다 토해서 미음이나 겨우 먹은 얼마 먹지도 않은 양의 음식물을 모두 게워내야만 속이 편안해졌다. 나중에는 미음만 먹었는데도 토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신물이 올라오면서 침샘도 같이 폭발한데다, 삼킬 수 없는 많은 양이 나와서 매번 종이컵을 옆에 두고 새벽 네시고 다섯시고 뱉으면서 뜬 눈으로 밤을 보냈었다. 몸을 뉘이면 가슴 한 가운데 식도 부분이 타듯이 쓰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명치가 딱딱해지는 고통 때문에 편안하게 잠을 자본 적이 오래다. 이 병에 걸리면 심하면 공황장애, 우울증까지 동반될 수 있다는데, 그 느낌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어떨 때는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도 하고, 밤마다 울면서 내 꼴을 비통하게 생각하며 울며 보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발병한지 보름정도인 12월 13일부터는 친정집에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번에 아프면서 느꼈지만, 친정 엄마만큼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신랑도 마음씨 좋고 배려심도 많은 착한 사람이지만, 나를 챙겨주는데에 있어서 그 깊이는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난다. 엄마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다들 본인 일이 먼저이고, 본인 가족들이 먼저지만, 만사 제쳐놓고 내가 먼저 일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뿐이구나라고 느꼈다. 내가 아프다고 가사일에는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코 앞에 밥상을 차려 내 놓아주는 엄마 때문에 감동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시집가기 전까지 엄마랑 나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도 아니고 내가 엄마를 애틋하게 생각할 정도로 서로 깊은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이번에 아플때 엄마의 진심어린 걱정과 보살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을 배아파 낳는 행위 자체로 나는 이 아이를 죽을때까지 책임질 것이다 라고 하는 약속이라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단호한 결의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내가 시집오기 전까지 엄마에게 바랬던 것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작은 월급으로 세명이나 키워야 하는 엄마는 삶이 팍팍해지면서 본인까지 팍팍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걸 내가 내 살림을 꾸려보니 알겠더라. 엄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이래서 다들 '친정 엄마'라는 단어에 가슴이 저릿하는 서사가 많은 거구나 했다.

친정 엄마의 보살핌 덕분으로 1월 14일 나의 신혼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태까지 호전되었다. 신혼집으로 돌아오기 전 주에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것이다. 모든 일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외할머니가 내 병까지 같이 가져가주신 건지 나는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이번 주말에는 절에 가서 할머니께 기도라도 올리고 와야겠다. 나는 딱히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프고 나서는 어디라도 빌고 싶어서 통도사에 가고 싶다고 한번 말했었는데, 이번주에 신랑이 가자고 하니, 좋은 곳에 잘 가고 계신지 기도라도 올려야겠다. 엄마는 나랑 같이 본 영화 '신과 함께'가 자꾸 생각난다고 하셨다. 재판을 잘 치뤄서 현몽으로 한번이라도 봽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에서겠지.

건강하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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